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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 I Love Musical : 16 Of The Most Famous Musicals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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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V.A. / I Love Musical : 16 Of The Most Famous Musicals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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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Mamma Mia (맘마미아!)
02. All That Jazz (시카고)
03. Momory (캣츠)
04. Once Upon A Dream (지킬 박사와 하이드)
05. All I Ask Of You (오페라의 유령)
06. Tonight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07.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08. Don't Cry For Me Argentina (에비타)
09. Any Dream Will Do (죠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
10. I Still Believe (미스 사이공)
11. Do You Hear The People Sing? (레 미제라블)
12. Music Of The Night (오페라의 유령)
13. Seasons Of Love (렌트)
14. Night Fever (토요일 밤의 열기)
15. Fame (페임)
16. Superstar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을 담은 최고의 뮤지컬 명곡 모음집 - 아이 러브 뮤지컬

맘마미아,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페임, 시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등 오리지널 캐스트 넘버 16곡 수록

* 뮤지컬 칼럼니스트 원종원씨의 뮤지컬 해설이 담긴 티켓저널이 들어 있습니다.

I Love Musical!

'아이 러브 뮤지컬(I Love Musical)'은 뮤지컬의 명품 백화점이다.
이곳에 실린 주옥같은 노래들은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이중에는 수백의 다른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세기적 히트곡들도 있고, 뮤지컬 애호가라면 빼놓을 수 없을 감미로운 멜로디의 명곡들도 있다. 하지만 역시 이 음반을 몇 십 배 더 재미있게 즐기는 요령은 원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래뿐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있는 작품의 이해와 의미도 만끽해 보길 바란다.

1. 맘마 미아! (Mamma Mia!)

'맘마 미아!'는 70∼8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스웨덴출신 혼성그룹 아바(ABBA)의 음악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인기를 누렸던 과거의 히트 음악으로 만드는 부류의 공연들은 팝 뮤지컬 혹은 어 트리뷰트 쇼(A Tribute Show)라 불리는데, 최근 세계 극장가의 높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형태의 공연물이다.
아바가 처음 유럽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74년 4월 6일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였다. 런던에서 한시간 반쯤 떨어진 남쪽 바닷가 휴양지 브라이튼에서 열렸던 이 대회에서 아바는 '워털루'로 대망의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다. 그룹의 주를 이루었던 비요른 크리스챤 울바에스(Bjorn Christian Ulvaeus)와 베니 앤더슨(Benny Andersson)이 처음 만난 것이 이미 66년이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스웨덴 내에서 싱어 송 라이터로 인기를 얻었었는데, 여성 보컬 멤버인 아그네사(Agenetha Ase Foltskog)와 프리다(Anni-Frid Synni Lyngstad)가 69년 비요른과 베니의 새 음반에 백 보컬로 참여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72년 팀에 합류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처음 활동 당시 팀 이름은 '비요른과 베니, 아그네사와 프리다'였는데, 너무 길고 불편해 각자 이름의 첫 글자를 따 아바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뮤지컬 '맘마 미아!'는 지중해의 어느 외딴 섬을 배경으로 아리따운 금발 처녀 소피가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던 와중에 어머니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고 아버지로 추정(?)되는 세 남자를 초대한다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7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40대 중년 부인이 90년대를 살고 있는 딸과 아바의 음악을 통해 교감을 이루는 스토리가 된 셈이다. 뮤지컬의 작가였던 캐더린 존슨은 아바의 리바이벌 콘서트라기보다는 뮤지컬을 좋아하는 매니아 층까지 아우르는, 그래서 아바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젊은 관객층까지 포용해보려는 시도를 담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한 소절만 빼고 아바의 음악은 개사 없이 원형 그대로 활용됐고, 여기에 보는 재미를 가미하기 위해 갖가지 무대 연출이 더해졌다. 뮤지컬의 제목은 75년 영국 챠트 1위를 기록했던 아바의 인기곡 '마마 미아(하느님 맙소사라는 의미의 이태리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99년 12월 6일, 런던 웨스트 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Prince Edward) 극장에서 개막된 '마마 미아!'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화 천삼백만 달러, 한화로 156억의 예약고를 이뤄내 이 분야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2004년 현재 뉴욕과 함부르크, 동경,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10여개 도시에서 각국어로 번안돼 공연되고 있다.

2. 시카고 (Chicago)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미국이라는 아스라한 추억을 배경으로 격동기의 미국 사회를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며 위트에 넘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농염한 재즈 선율이 거리에 넘쳐나던 1920년대 시카고, 자신의 정부(情夫)를 죽인 밤무대 여가수 록시 하트와 남편과 여동생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고 살해한 보드빌 여배우 벨마 켈리가 여감옥에 수감되며 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잔혹한 살인자였던 이들은 돈 밝히는 간수장, 거짓 변론에 능한 변호사, 선정적인 기사만을 쫓는 기자들에 의해 정당 방위, 순간적인 정신 착란 등의 죄목으로 장식되고 포장되어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는다. 출감 후, 다시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두 살인자출신(?) 여가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같은 결백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나라, 이래서 미국은 좋은 곳이야!'
'시카고'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1975년이다. 브로드웨이의 46번가 극장에서 막을 올렸는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극장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대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제작자는 브로드웨이 명콤비인 작사가 프레드 엡(Fred Ebb)과 작곡가 존 칸더(John Kander). 그러나 엡과 칸더가 처음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작품은 사실 '시카고'가 아니라 '66년 발표됐던 뮤지컬 '카바레(Cabaret)'였다. 브로드웨이 브로드허스트 극장에서 초연된 이 뮤지컬은 나치시대 동독을 배경으로 '킷 캇 클럽(Kit Kat Club)'이라는 카바레와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사랑 그리고 이별이야기를 다루었다.
뮤지컬 '시카고'는 '제 2의 카바레' 혹은 '70년대의 카바레'라고도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시카고'의 제작진이 대부분 '카바레'에 참여했던, 그러니까 소위 '카바레 팀'이 다시 뭉쳐 만들어낸 뮤지컬이었기 때문이다.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이라는 선전문구처럼 '시카고'에는 20년대 당시 미국 사회의 치부에 대한 시니컬한 비판의식이 과감하게 묘사했다.
'시카고'는 '76년 토니상 수상식에서 7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지만 단 한 개도 수상하지 못한 이색 기록을 갖고 있다. 같은 해 무대에 올라 9개 부문 11개의 후보에 올라 9개의 상을 석권한 '코러스 라인'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그러나 그것이 '시카고'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90년대말, 뛰어난 작품성과 흥행가능성을 확신한 브로드웨이의 흥행사들이 '시카고'의 리바이벌 무대를 계획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96년 브로드웨이 리차드 로저스 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린 '시카고'의 리바이벌 무대는 큰 성공을 거뒀다. 객석은 연일 관객들로 가득 찼고, '시카고'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침내 97년 다시 맞은 토니상 수상식에서 '시카고'는 8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남·녀 주연상을 비롯, 6개의 토니상을 거머쥐었다. 리바이벌의 성공은 전세계로 이어져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좋은 흥행실적을 거뒀다.
2003년에는 무대를 떠나 스크린을 찾기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된 바 있지만 특히 이번 영화버전 '시카고'는 호화로운 배역진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두 살인자로는 각각 '캐더린 제타 존스'와 '르네 젤위거'가, 이들의 변호사인 '빌리'역으로 '리차드 기어'가 등장했다.

3. 캣츠 (Cats)

뉴욕에서 가장 오래 산 고양이는?
정답은 뮤지컬 '캣츠'다. 뉴욕 맨하탄의 극장구역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윈터 가든 극장에서 1982년 8월 7일부터 공연을 시작한 이 작품은 2000년 9월 10일까지 18년 동안 쉬지 않고 막을 올려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사상 가장 긴 공연기록을 세웠다 (간혹 '판타스틱스(Fantastics)'가 가장 오랜 브로드웨이 공연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소형 극장에서 공연됐던 '판타스틱스'는 일반적으로 1,000석 이상 규모의 대형 극장을 대상으로 하는 브로드웨이의 작품으로는 구분하지 않아 '캣츠'와 비교되긴 힘들다)
하지만 '캣츠'가 초연된 곳은 미국이 아닌 영국의 뉴 런던 극장에서였다. 1981년 5월 15일 초연된 이래 장장 21년의 세월동안 쉬지 않고 공연을 계속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동안 장기 상연된 뮤지컬이 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8천 9백 5십회의 공연동안 8백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것으로, 입장권 수익만 1억 3천 6백만 파운드 그러니까 한화로 약 2천 700억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캣츠'의 원작은 시집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인으로 귀화한 시인 T. S. 엘리엇의 연작시집 '지혜로운 주머니쥐의 고양이에 관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에 영국의 천재 뮤지컬 작곡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곡을 붙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집의 제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데, 가장 유력한 해석으로는 서양에서 주머니쥐가 지혜로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것, 그리고 생전에 친구들 사이에서 엘리엇의 별명이 '올드 포섬'이었던 것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다.
'캐츠'의 등장인물은 물론 사람이 아닌 고양이들이다. 인간세상처럼 이러저러한 개인사를 갖고 있는 고양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시 한번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한 마리 고양이를 찾는다는 줄거리다. '고양이 목숨은 아홉 개'라는 서양의 전설이 배경이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캣 걸'이 여러번 죽었다 되살아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정말 고양이 몸짓으로 재즈 댄스에서 탭 댄스, 발레, 현대 무용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춤의 세계를 능수능란한 안무와 음악에 맛깔스럽게 버무려놓은 것이 대중적인 인기의 비결이다.

4.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Jekyll and Hyde)

수많은 뮤지컬들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들을 뽐내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만큼 음악이 주목받은 경우도 드물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공연 자체보다 앨범으로 더 유명한 전형적인 사례다.
이 뮤지컬의 제작자는 레슬리 브리쿠스(대본, 작사)와 프랭크 와일드혼(작곡)이다. 레슬리는 아카데미 영화상에 열 번, 토니상에 네 번이나 후보에 올랐던 정상의 작가다. '빅터/빅토리아(핸리 만시니와 공동작업)', '나홀로 집에(Home alone)', '후크', '수퍼맨' 등등 그가 관여한 히트 영화나 뮤지컬들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바쁠 정도로 많다. 한편 와일드혼은 브로드웨이에서 손꼽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작곡가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때 또다른 작품 두 개('시빌 워(Civil War)'와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를 같은 시기에 무대에 올리는 저력의 소유자이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루씨역의 오리지널 캐스팅 멤버인 린다 에더의 실제 남편이기도 하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뛰어나다보니 제작된 음반의 수도 여럿이다. 이중 가장 먼저 세상에 소개된 것은 1990년 발매된 컨셉 음반이다. 전술한 린다 에더와 전설적인 뮤지컬 배우 콤 윌킨슨이 참여했다. 두 장짜리 전곡수록 앨범은 94년과 97년에 제작됐는데, 이중 매니아들로부터 특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나중에 제작된 브로드웨이 캐스팅 앨범이었다. 이유는 다름아니라 주연을 맡았던 로버트 쿠치올리 때문이다. 작품의 성격상 한 무대에서 두 가지 상반된 목소리(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를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데,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완성도 높은 노래와 연기를 선보여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독일의 브레멘, 스페인의 마드리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그리고 헝가리, 일본 등에서 제작된 세계 각국의 캐스팅 음반이 발표됐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스타 캐스팅으로도 유명했다. 록 싱어인 스팅이나 '베이워치'의 미남매우 데이빗 핫셀호프(국내에서는 말하는 자동차 '키트'를 몰고 다니는 것으로 더 유명했던) 등이 이 역을 맡아 무대에 등장했었다. 그러나 공연 자체로는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주연배우의 연기력에 크게 의지해야 함으로써 오히려 적절하지 못한 배우가 무대에 서면 표현에 무리가 오는 작품 자체의 속성 때문에 기인된 문제였다. 조만간 국내 번안 무대도 예정되어 있어서 어떤 스타일의 한국식 지킬 박사가 등장하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5.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프랑켄쉬타인, 드라큘라, 미녀와 야수와 함께 서양의 4대 괴기담 중 하나라는 오페라의 유령은 원래 프랑스 소설가인 가스통 를루가 1911년 발표한 동명 제목의 환타지 소설이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 지하의 미로같이 얽힌 비밀 공간에 산다는, 얼굴 반쪽이 일그러져 항상 하얀 오페라 가면을 쓰고 다닌다는 이 무시무시한 캐릭터는 후에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어졌다. 하얀 무대 의상을 입은 미모의 오페라 여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부르면 객석의 한 박스석 그늘 안에서 그녀를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 설정은 세인들의 상상을 자극하고도 남았던 것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로 명성을 얻기 전에는 1920년대 할리우드 괴기물 전문 배우- 론 채니(Lon Chaney)의 영화버전으로 유명했었다. 1925년 유니버설 영화사에 의해서 흑백 무성영화로 제작됐던 이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에 직접 철사를 심고, 셀룰로이드 판을 살갗 밑에 붙이는 등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열정을 불살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도 역시 이같은 무성영화의 추억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단순히 괴기영화의 각색은 아니다. 뮤지컬의 제작진은 괴기물의 섬뜩함보다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영국 뮤지컬의 자존심이라는 '마이다스 작곡가' - 앤드류 로이드 웨버, 서구의 대표적 흥행 대작인 뮤지컬 '빅 4'의 프로듀서 - 카메론 매킨토쉬, 무대 연출의 거장 해롤드 프린스 등 '오페라의 유령'에 참여한 세계적 명성의 제작자들은 과거 어떤 영화나 무대 공연보다 가장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만들려 노력했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이 국가나 문화를 초월한 세계적인 규모의 성공을 이룩한 이면에는 바로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는 만국공통의 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86년 런던의 허 머제스티스 극장(Her Majesty's Theatre)에서 초연됐으며 이후 브로드웨이는 물론 캐나다, 독일, 일본 등 전세계 15개 국가의 백여개 도시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한국어 버전이 처음 선보였던 것은 2001년의 일로 아시아에서는 네 번째 공연이었다.

6.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제롬 로빈스와 레오나르드 번쉬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세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 미국 이민사회에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갈등의 원인이 이탈리아 베로나의 두 가문 - 몬테규와 캐플렛 가에서 비롯됐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남미에서 이주해온 이민 청년들과 미국의 백인 청년들간의 다툼과 알력으로 바뀌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민자들이 주로 뉴욕 웨스트 사이드에 몰려 산다는 것에 착안해 뮤지컬의 제목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됐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번쉬타인의 완성도 높은 음악이다. 여기에 브로드웨이의 천재 뮤지컬 연출가라는 스테판 손드하임의 번득이는 가사는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 처음 무대에서 선보였던 것은 1957년인데 특히 훗날 '시카고'와 '거미여인의 키스'등으로 명성을 얻게된 여배우 치타 리베라가 라틴계의 조연인 아니타 역으로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영화버전이 제작된 것은 1961년이다. '사운드 어브 뮤직'의 감독이었던 로버트 와이즈가 메가폰을 잡았고, 여기에 전설적인 제롬 로빈스의 안무가 덧붙여졌다. 나탈리 우드와 리차드 베이머를 일약 세계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시킨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 10개 부문을 휩쓸며 대 파란을 연출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국내 공연가에서도 단골 작품으로 등장했었다. 특히 국내 뮤지컬계의 형제 스타인 남경읍과 남경주가 각각 베르나르도와 토니역으로 자주 등장해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91년과 94년, 97년에 각각 제작된 국내 공연에서는 모두 故김상열씨가 연출을 맡았었다.

7.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예수는 헤비메탈 가수, 열 두 사도는 히피족?
황당한 만화이야기 같지만 바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내용이다.
1971년 브로드웨이의 마크 헬링턴극장에서 '슈퍼스타'가 초연됐을 때, 극장 밖에서는 흥분한 기독교인들의 데모가 소용돌이쳤다. 우유부단한 예수, 불쌍한 유다라는 극 내용이 용납될 수 없는 불경(不敬)이란 것이었다. 예수를 슈퍼스타라 부르는 것 자체가 신격모독이라는 항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유태인들도 데모대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극중 분열양상으로 일관하는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이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점철돼 있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데모대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입장권은 연일 매진됐으며 음반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후에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을 작곡한 영국 태생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약관의 나이에 저지른 일대 사건이었다.
'지저스...'는 록 뮤지컬이다. 요즘 록음악은 대중화됐지만, 60∼70년대는 사정이 달랐다. 록 음악은 당시 서구를 휩쓸던 히피나 반전주의자들이 즐겨듣던 음악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서태지의 하드코어에나 비할까. 록 음악은 당시까지만 해도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그런 의미에서 웨버는 록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로만 이뤄진 하나의 전위적인 실험극을 시도했던 셈이다. 하긴 2000년전 예수가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의 기수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실로 절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웨버의 실험정신은 캐스팅에서도 돋보였다. 최초로 발매된 영국판 '지저스...'의 컨셉 앨범을 살펴보면, 예수 역으로 전설적 록 밴드인 '딥 퍼플'의 리드 싱어 이안 길런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72년 발표된 이들의 대표곡 '스모크 언 더 워터'는 지금도 록음악의 성서 격으로 통한다. 그런 딥 퍼플의 리드싱어가 예수로 나왔으니, 그야말로 서태지나 HOT가 사극에서 세종대왕역을 맡은 셈이나 다를 바 없었다. 90년대말 제작된 30주년 기념공연 컨셉 앨범에서는 예수를 조롱하는 헤롯왕으로 록 음악계 악마주의 논쟁의 선봉에 있는 앨리스 쿠퍼가 등장하기도 했다. 가히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물론 '지저스..'의 파격적인 현대화 작업은 2000년전 예수의 죽음을 아무 치장없이 오늘에 재조명해 보자는 의도이다. 극중에서 유다는 "예수, 당신은 왜 하필 매스미디어도 없는 이런 옛날에 태어났지? 차라리 20세기를 선택했다면 TV고, 신문이고 난리를 쳤을 것 아니오.."라고 노래한다. 새로운 즈믄해, 과연 우리는 유다와 다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8. 에비타 (Evita)

'에비타'는 실존했던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자 민족적 영웅이었던 에비타의 삶을 서사시적 무대에 담은 수작이다. 1976년 영국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사가 팀 라이스가 처음 발표했다.
'산타 에비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에바 두아르테는 1919년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가난으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부귀와 명성을 얻으려는 그녀의 야망은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정치가 페론과의 결혼으로 이뤄진다. 권력의 핵심에서 에비타는 페론에게 지배계층인 군부와 결별케 하고, 데스카미사도스와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삼게 했다. 데스카미사도스란 당시 소수 귀족계급에게 억압받고 핍박받던 대다수 아르헨티나의 민중을 일컫는 말이다. 소외받던 계층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는 비난을 면키는 어렵지만, 그녀가 아르헨티나 민중으로부터 받은 지지와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에비타가 타계하자 그녀를 성녀로 추대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인들은 하루에도 수천통씩 바티칸에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알고보면 에비타를 세계적 인물로 부상시킨 것은 뮤지컬이다. 뮤지컬이 없었다면 에비타는 영원히 아르헨티나에 국한된 성녀로 남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웨버가 사후 30년만에 그녀를 세계적 민권운동의 성녀로 환생시킨 셈이다.
뮤지컬 '에비타'는 명감독 알란 파커에 의해 1996년 영화화되기도 했다. 주연으로는 마돈나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등장했었는데, 특히 마돈나는 황금빛 시뇽 스타일의 쪽두리 머리와 복고풍 스커트, 빨간 립스틱과 새까만 아이라이너로 대변되는 에비타 룩을 선보이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천방지축 '팝계의 요부'라 불리는 마돈나가 성스러운 에비타의 역으로 가당치 않다는 아르헨티나 일반 민중들의 데모가 가십기사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에비타'의 묘미는 남미 리듬을 적절히 살려 감칠맛을 낸 음악적 완성도에 있다. 작곡자 웨버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특히 '에비타'의 노래들은 유명 클래식 가수의 콘서트 애창곡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9. 조셉과 어메이징 테크니칼라 드림코트 (Joseph and Amazing Technicolour Dreamcoat)

이 작품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가 처음 함께 만든, 소위 황금 커플의 '처녀작'이다. 1968년 당시 스무살 안팎의 재기 어린 웨버와 라이스는 젊은 천재들답게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그들만의 '물건' 구상에 골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중, 런던 소재의 초등학교인 콜렛 코트 스쿨(Colet Court School) 교장으로부터 학기말 학예회에 쓰일 노래극 제작을 의뢰 받는다. 이것이 15분 길이의 록앤롤 노래극 '죠셉...'이 처음 세상에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죠셉과 총천연색 외투' 쯤 되는데, 성서의 인물 - 요셉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각색한 것이다.
'죠셉...'의 재미는 별난 이야기 형식에 있다. '죠셉...'은 무대 속에 무대인 '액자무대'를 통한 극중극(劇中劇) 형식으로 진행되는 특이한 구성을 갖고 있다. 이런 기본틀 안에서 극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어린이 합창단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때에 따라 극중 관객과 극중 배우로 변신해 가면서 출연 배우들과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쏟아낸다. 물론 아이들의 맑은 노래소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본격적인 장편 뮤지컬이 초연됐던 팔라디움 극장의 어린이 합창단이 세계 각국에서 '드림코트 합창단 선발대회(Dreamcoat Choir Challenge)'를 거쳐 등용된 뮤지컬 꿈나무들이었다는 점이다. 지금도 '죠셉'이 공연되는 나라에서는 어김없이 합창단 선발대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뮤지컬 전문 어린이 합창단' 선발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뮤지컬 제작의 참여정신을 나누게 된다.
'죠셉'은 국내 무대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저작권 개념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90년대 중반, 극단 현대극장에 의해 세종문화회관에 올려졌다. 당시 죠셉으로는 '유열'이, 나레이터 역으로는 '신효범'이 무대에 등장했다. 비디오용 영화로도 제작이 된 적이 있다. 세계적인 히트 뮤지컬을 작곡하는 웨버의 작품을 관장하는 리얼리 유스풀 그룹(Really Useful Group)의 한 계열사인 리얼리 유스풀 필름(Really Useful Film, 정말 쓸만한 영화사)에서 1999년 1시간 18분짜리 뮤지컬 영화를 발표했던 것이다. 이 영상물에는 뮤지컬 전문 배우들은 물론 인기 소우프 오프라 '다이너스티(Dynasty)'의 여주인공 조앤 콜린스나 영화 '간디'의 감독으로 혹은 '주라기 공원'에서 공룡을 부활시키는 재력가 회장 역으로 등장한 바 있는 감독 겸 배우 리챠트 어텐보로우가 카메오 혹은 조연으로 참여해 재미를 더해준다.

10. 미스 사이공 (Miss Saigon)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모티브는 1985년 한 영국 신문에 실린 기사였다. 그곳엔 '월남전이 종식된 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상흔은 아물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공항에서 생이별하는 월남 여인과 혼혈 소녀의 사진이 있었다.
사연은 참으로 기구했다. 월남전 당시 한 베트남 여인이 미군 파일럿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급작스런 사이공의 몰락과 그로 인한 혼란 속에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됐다. 미군 병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 때문에 여인은 오랜 세월 끝에 어렵사리 아이 아빠에게 연락을 하게 됐지만,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미군 병사는 고국에 돌아와 이미 다른 미국 여인과 결혼을 한 몸이었다. 결국 아이의 비자밖에 허가가 나지 않았고, 공항은 울음바다가 됐다.
'레 미제라블'의 영국시장 진입을 성공시킨 뒤, 후속 작품을 모색하던 끌로드 미쉘 쉔버그와 작사가 알랑 부브릴은 이 기사와 사진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때마침 푸치니의 고전 오페라 '나비부인'의 현대화를 논의하던 이들은 '월남판 나비부인'을 뮤지컬로 만들어 보는데 의견을 모았다.
수년여에 걸친 사전조사와 오디션 그리고 1,000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소요된 '미스 사이공'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제반 요소를 골고루 갖추어 나갔다. 우선 규모가 초대형으로 실물 크기의 헬기가 무대에 등장하는 아비규환의 사이공 탈출장면은 실제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무대를 연출했다. 동남아 도시를 환락가처럼 표현했다는 비난도 들었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춤과 노래 그리고 술과 여자들은 관객들이 만족할만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또 '미국에 가면 자동차도 갖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는 이른바 아메리카 드림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멜로적 요소까지 삽입되어 관객의 눈시울을 붉혔다.
1989년 런던에서 초연된 '미스 사이공'은 초기부터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막을 올린 지 2년만에 3,3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고, 이듬해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했을 때는 개막도 하기 전에 이미 3,7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약표가 팔려나가는 예매 기록을 수립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450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또 지금까지 제작된 음악 CD만도 8장이나 되는데 영어는 물론 독일어, 헝가리어, 일본어로까지 만들어졌다. 1991년 미스 사이공은 연극계의 아카데미상이 불리는 토니상 수상식에서 총 11개 부문의 후보작으로 올라 남녀 주연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다.

11. 레 미제라블 (Les Mis rables)

불어로 '레 미제라블'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직역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나폴레옹 통치기의 암울했던 계급 사회와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한 죄수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겐 빵 한 조각과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프랑스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소설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널리 사랑 받고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작곡자인 클로드 미셸 쉔버그와 작사자인 알랑 부브릴은 모두 프랑스인이다. 그러나 '레 미제라블'의 세계적 명성은 영국인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의 혜안(慧眼) 덕이다. 80년 발표된 오리지널 불어판 '레 미제라블' 음반을 듣고 상품화의 가능성을 예견한 그는 86년 영어판으로 재제작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발표한다.
런던에서 시작된 이 공연은 99년 말까지 모두 5,837회의 공연기록을 수립, '캣츠'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장기 상연된 뮤지컬이 됐다. 2004년 현재도 런던 팔레스 극장의 공연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웨스트 엔드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87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로도 진출해 뮤지컬계의 최고 영예인 토니상에서 10개 부문 12개상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휩쓰는 대파란을 연출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레 미제라블'을 공연한 일류 수준의 극단은 모두 40여개 단체에 이른다. 런던과 브로드웨이, 워싱턴, 토론토 같은 영미권은 물론 텔 아비브, 부다페스트, 오슬로, 비엔나, 스톡홀름, 암스테르담, 파리, 프라하, 마드리드, 코펜하겐, 마닐라, 헬싱키,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리고 이웃 일본 동경 등지에서 20여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 24개국 194개 도시의 무대에 올려졌다. 지금까지 총 31,750회의 공연에 4천2백만 관객이 극장을 다녀간 '대박' 뮤지컬이다.
'레 미제라블'의 세계적 성공은 갖가지 이색 기록을 낳았다. 그 중 특이한 것은 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의 진영에서는 유세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여론조사에서의 우세를 투표장까지 이어갈 대중적 멜로디의 선전가(宣傳歌)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이들이 선택한 노래는 바로 '레 미제라블'의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 '내일이면(One day more)'이었다. '내일이면 하늘의 심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이들의 전략이 주효했는지 야당 후보라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압도적 표차의 승리를 거뒀다. 이밖에도 중국 천안문 사건 때에는 중국인 학생 시위대의 데모가로 '레 미제라블'의 주제가격인 '사람들의 (혁명의) 노래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목청 높여 불려졌으며, 걸프전에서는 미 국방성의 공식 요청으로 군대 파병에 관한 홍보 영상물의 음악에 장발장의 노래 '이 청년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소서(Bring him home)'가 채택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3. 렌트 (Rent)

'렌트'의 원작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다. 1900년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젊은 시인 루돌프와 수예 바느질로 연명하는 독신 처녀 미미의 슬픈 사랑을 그린 '라 보엠'은 '그대의 찬 손', '무젯타의 왈츠' 등 주옥같은 아리아로 우리 대중에게도 유명한 오페라의 고전이다. '렌트'는 바로 이 작품을 현대 빈민가로 옮겨놓은 '20세기 뉴욕판(版) 라 보엠'인 셈이다.
제목으로 쓰인 '렌트'는 우리말로 하면 '집세'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바로 월세 아파트의 임대료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한 뉴욕 젊은 예술가들의 인생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함축적 단어다. '렌트'는 화려한 무대와 특수효과가 넘실대는 브로드웨이의 여타 뮤지컬들과 달리 500석 이하 규모인 어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돼 별다른 무대 변환이나 화려한 안무도 없이 순수히 락 음악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만으로 객석을 열광시켰다.
'렌트'를 이야기하면서 제작자인 조나단 라슨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7년여동안 혼신의 노력을 쏟으며 각본과 가사, 음악을 담당했던 그는 96년 겨울 자신의 작품이 첫 무대에 오르기 바로 전날, 급작스런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다섯으로 작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과로가 빚어낸 예기치 못한 비극이었다. 뮤지컬 '렌트'의 주된 모토인 "오늘 외에는 시간이 없다(No day but today)"라는 대사는 원래 라슨이 어려운 환경에서 예술을 위해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매순간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구상해낸 대사였다. 원작인 '라 보엠'과는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 미미를 극적으로 되살린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누구도 라슨의 짧은 생애가 바로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그의 요절은 마치 작품을 통해 예견된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후에 '렌트'의 성공은 라슨의 이른 죽음을 더욱 아쉽게 했다. '렌트'는 퓰리쳐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상, 아우터 크리틱스 써클 어워드 등 굵직한 뮤지컬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미국 뮤지컬의 대표적인 상(償)인 '토니상'의 96년 시상식장에서 음악과 각본 2개 부문의 트로피가 라슨의 영정에 올랐다.

14.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

비지스는 흔히 비틀즈, 클리프 리차드와 더불어 가장 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대표적인 서양의 대중음악가로 손꼽힌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이런 비지스의 음악과 70∼80년대 '문화코드'로 통하던 디스코 열풍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무대보다 스크린을 통해 먼저 소개됐다. 존 베담이 메가폰을 잡고 존 트라볼타가 주연해 1977년 발표됐던 이 영화는 멋진 디스코 복장의 남자 주인공이 한 손을 들어 하늘을 찌르는 춤동작으로 유명하다. 무대용 뮤지컬이 처음 선보인 것은 1998년 런던의 팔라디움 극장에서였는데, 역시 집게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디스코 동작을 홍보용 전단과 포스터로 활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영화와는 달리 노래로 극을 진행해야하는 뮤지컬의 구성상 특징 때문에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비지스의 노래들이 몇몇 덧붙여지기도 했는데, 예를 들자면 '트래져디(Tragedy)'나 '이모탈리티(Immortality)' 등이 그 사례다. 물론 이같은 시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뮤지컬의 배경인 1970년대의 디스코 열풍을 미루어 짐작케해주는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토요일밤의 열기'는 제작자인 로버트 스틱우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비지스의 매니져이자 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마이다스 기획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영화에서 무대에 이르기까지 '토요일밤의 열기'를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꾸준히 추진해 온 인물로 유명하다. 영화와 달리 무대용 뮤지컬을 만들면서 그는 보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꿈꾸어왔고, 결국 스토리 자체의 재미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안무가 돋보이는 뮤지컬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연극배우 윤석화가 제작, 연출을 맡아 2003년 한국어 버전의 국내 공연을 올려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15. 페임 (Fame)

'페임'은 예술학교에 진학해 미래의 꿈을 펼치는 미국 청소년들이 이야기이다. 무대의 첫 장면은 뉴욕에 있는 예술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모여있는 일련의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의 기회를 얻은 이들은 4년 후 성공적인 졸업을 위해 모진 훈련과 공부를 감내해야 한다. 이 학교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명성(Fame)에는 대가가 있다. 그리고 그 대가의 지불은 이 학교에서 시작된다.. 너희들의 땀으로!"
뮤지컬 '페임'은 원래 무대용이 아닌 스크린용 영화로 제작된 것이 원작이다. 이 이색적인 이야기의 원작자는 데이비드 드 실바(David de Silva)인데, 실제 뉴욕출신인 그는 역사 선생을 꿈꾸던 교육학도였다. 그의 이야기 '페임'은 사실 드 실바의 개인적인 삶을 투영한 스토리였고, 그래서 그는 '페임의 아버지(Father of Fame)'라는 별칭을 얻었다.
드 실바가 MGM으로 판권을 넘겨 처음 영화로 제작된 것은 1980년 명감독 알란 파커(Alan Parker)에 의해서다. 영화는 전대미문의 흥행성공을 가져왔고, 결국 그해 세 개 부문 네 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성공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이어져 6년여에 걸친 시리즈물의 제작을 이뤄냈다. 물론 이 TV 드라마의 성공도 수차례에 걸친 에미상을 수상으로 연결됐으며, 미국 전역의 신디케이션은 물론 전세계 68개국에서 방송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국내 TV에 방송되던 수입 드라마 '페임'은 바로 이 영상물이다.
뮤지컬의 제작은 방송 프로그램의 종영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다. '페임'의 긴 생명력을 믿은 원작자 드 실바가 본격적인 무대버전의 공연을 제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페임'의 국내 초연당시 제작사와 국내 언론들에서는 이 작품이 런던에서 초연됐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무대 버전은 미국 마이애미의 코코넛 그로브 하우스(Coconut Grove House)에서 1988년 처음 제작됐으며, 이듬해에는 필라델피아의 월넛 세인트(Walnut St.) 극장에서 다시 공연된 기록도 있다). 초창기 '페임'의 공연은 특히 스웨덴과 북 아메리카에서 큰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대중적인 성공에 힙입어 가장 오랜 기간 장기 상연이 되는 곳은 역시 런던이다. 1995년 도심의 캠브리지 극장에서 초연된 영국 버전은 빅토리아 팔레스 극장과 프린스 어브 웨일즈 극장을 거쳐 2004년 현재 코벤트 가든 근처의 올드위치 극장에서 종연 예정 없이 오픈 런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런던 공연에서만 2,000 켤레의 재즈 슈즈가 닳아서 버려졌고, 800개의 땀닦는 밴드와 세대의 노란 뉴욕 택시가 소품으로 생명을 다했다는 홍보 문구는 이 공연의 높은 대중적 성공을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글 / 유니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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