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켓에 다소 사용감이 있고 시디에 기스가 다소 있습니다. 가격 인하.
01. Existence
02. Sacrifice
03. Friends & Family
04. Father
05. New York Groove
06. Temptation
07. Not Not Like You
08. Black Sheep
09. Triks Of The Trade
10. Ish
11. Let It Rip
12. Outro
본질적인 인간의 물음을 탐구하는, 성찰적인 얼터너티브 힙합 밴드 Trik Turner
소닉 : 개인적인 음악 취향에 관한 건데요. 지금 당신의 차 스테레오에서 즐겨 듣는 음반은 어떤 건가요?
베닝턴 : 글쎄요. 현재 내 차에 있는 것은 트릭 터너(Trik Turner)입니다.
지난 2001년 10월 1일 링킨 파크(Linkin Park)의 프론트맨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과 ‘소닉 매거진’이 가졌던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어쩌면 무심하게 내뱉은 말일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동료 뮤지션이, 그것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밴드의 리더가 즐겨 듣는 음악으로 트릭 터너를 언급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베닝턴이 트릭 터너를 지목한 이유는 아무래도 링킨 파크와 서로 음악취향이 맞아서 일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끼리 통하는 취향이란 어떤 것인가.
이제 소개할 트릭 터너는 막 메이저 데뷔작을 낸 6인조 얼터너티브 힙 합 밴드다. 이번에 나온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이 국내에는 물론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는 처음 소개되기 때문에 트릭 터너는 신인 중의 신인 밴드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디 앨범 한 장과 이미 2장의 싱글이 먼저 나와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고, 그 덕분에 링킨 파크도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두 번째 싱글 “Friends And Family”는 3월 9일자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2위에 랭크 되어 있으며 계속 순위가 상승중이다. 트릭 터너의 활동 거점은 메이저리거 김병현이 활약중인 애리조나주 피닉스다. 랩 메탈 밴드 혹은 얼터너티브 힙 합 밴드들이 주로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중인 것을 가만하면 피닉스라는 지역은 좀 낯설지만, 피닉스는 나름대로 힙 합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 도시다. 그룹의 트윈 보컬 데이비드 바우어스(David Bowers)와 더그 리드 무어(Doug Rid Moore)가 바로 그 힙 합 동아리에서 엠시(MC)를 하면서 만나 1999년 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힙 합 신봉자들이던 이들은 그러나 좀더 별개의 음악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이 둘의 실험이 트릭 터너 음악의 핵심 키워드다.
사실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성공 이후 많은 밴드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힙 합과 하드 록을 결합한 음악에 디제이(DJ) 한 명을 끼운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 문제는 단순히 힙 합과 록을 섞는다 해서 다들 림프 비즈킷처럼 놀라운 파급효과를 얻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데이비드와 더그는 바로 이점에 반기를 들었다. 더그는 말한다. “힙 합은 멋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방법으로 남용되어왔다.” 그래서 이들은 무언가 차별되는 색다른 비전을 구상했고 (이를테면 이들보다 먼저 나온 링킨 파크에 의해 주창된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와 맞닿아있는), 그 이론에 적합한 멤버들을 영입했다. 두 명의 보컬리스트는 기타리스트 트레이시 트레 소스태드(Tracy Tre Thorstad), 베이스 주자 스티브 포크너(Steve Faulkner), 드러머 숀 가든(Sean Garden)의 록 밴드 편성을 갖추고 디제이 디비엑스(Danny “DJ DBX” Marquez)를 기용해 갖가지 샘플링과 스크래칭 등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 운용을 꾀했다. 멤버 개개인은 기본적으로 인디 록부터 메탈, 턴테이블리즘 그리고 funk에 이르는 폭 넓은 스타일에 영향 받아 이들의 음악에는 강렬한 록과 랩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으며 자유로운 음악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릭 터너에게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은 올드 스쿨 힙 합이다. 앨범 전편에 흐르는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은 올드 힙 합의 그루브가 절대적이다. 결코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결 치는 그루브를 따라가다 보면 트릭 터너의 사운드에 스폰지처럼 흡수되고 만다.
그런데 음악보다 이들이 남들과 더욱 차별되는 것임과 동시에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가사다. 노랫말은 엠시 출신답게 라이밍을 딱 떨어지게 구사하는 두 명의 보컬리스트가 전담하고 있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인 랩의 주제 대신 죽음 같은 본질적인 물음과 에이즈 등 심각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그들의 가사관은 확고하다. 데이비드의 말이다. “우리는 여자들과 머저리들에 대해 노래하지 않는다. 우리의 가사는 좀더 성찰적인 것들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리고 매일 직면하는 현실들을 바라보는 그런 것들이다” 머릿 곡인 “Existence”는 제목이 시사하듯 인간과 신의 ‘존재’에 대해 묻고 있는 노래다. “내 일생 동안 난 해답을 찾아왔다. 왜 난 우리가 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건가. 우리 모두가 경배하는,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신은 누구인가” 이 노래에 흘러나오는 ‘think’, ‘drink’, ‘sink’처럼 트릭 터너는 거의 모든 노랫말에 각운을 절묘하게 삽입해 놓는다. 또한 “Father”에서는 “당신은 날 폭력으로 키웠지. 내가 잊어버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문제도 안 돼. 난 내 기억 속에서 그것을 지울 수가 없어. … 당신은 나에게 삶을 주었지. 하지만 당신은 결코 희망을 주지 않았어”라며 폭압적인 부권에 대한 분노를 토해낸다.
올드 스쿨 힙 합에 경도된 그러나 함몰되지 않은
1999년 6명의 라인업을 완성해 팀을 출발한 트릭 터너는 1년 뒤인 2000년 ‘RCA’ 레이블과 계약하고 인디 앨범 [Black Sea And Brown Trees]를 내놓았다. 하지만 곧 그룹은 메이저 데뷔작을 발표하기로 하고 가즈맥(Godsmack), 콜 챔버(Coal Chamber), 파워맨 5000 등과 앨범작업을 한 바 있는 프로듀서 머드록(Mudrock)과 함께 녹음작업을 해나갔다. 그 작업을 통해서 전작의 여러 중요한 곡들이 더욱 극한으로 몰아가는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바로 이 앨범 [Trik Turner]다. 날카로운 기타음 그리고 둔중한 드럼 앤 베이스와 함께 시작되는 첫 곡 “Existence”에서는 조금은 나른하게 들리는 보컬에 이어 기계처럼 건조하게 내뱉는 보컬/래핑이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 좀더 리듬감 있게 진행되는 “Sacrifice”는 전형적인 랩/록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어깨가 들썩여지다가도 문득 비애(悲哀)가 느껴지는 곡이다. 싱글 히트 곡인 “Friends And Family”는 처음의 코러스부터 귀에 착 달라 붙는다. 힙 합 비트 위에 얹은 영롱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부드러운 래핑 그리고 근사한 멜로디와 현악 세션. 거기에 여운을 남기는 깔끔한 끝맺음까지 가히 앨범의 백미라 할만하다.
그에 비해 “Father”에서는 그 주제 탓인지 시종일관 신경질적으로 랩을 쏟아내며 격렬하고 날카로운, 또 약간은 싸이키델릭한 메탈 사운드가 혼란스런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 피아노 루핑과 여러 샘플링이 쓰인 “New York Groove”는 역시 그루브가 가장 돋보이는 곡으로, 여기서의 기타 리프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의 현란한 기타 묘기를 연상시킨다. 현악 연주가 심금을 울리는 유일한 슬로 템포 발라드 “Not Like You”는 선율이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어딘지 모르게 파이어하우스(Firehouse)의 “Love Of A Life Time”과 닮아있다. 완전한 올드 스쿨 힙 합 트랙인 “Black Sheep”에서는 정통 힙 합 래핑과 디제이 디비엑스의 스크래칭 기법이 전면에 등장한다(국내 힙 합 팬이라면 노래의 한 대목에서 듀스의 대표적 힙 합 넘버 ‘無題’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듯). 첫 싱글로 발표된 곡이자 앨범에서는 마지막에 실린 “Let It Rip”은 사정없이 몰아치는 드라이브감으로 마냥 신나는 록 넘버.
어찌 들으면 이들의 음악이 림프 비즈킷이나 콘, 링킨 파크 등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트릭 터너가 내세우는 올드 힙 합과 메탈의 접목도 이미 선례가 있던 것들이다. 하지만 랩 메탈이나 얼터너티브 랩 스타일은 이제 하나의 장르로 정형화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트릭 터너가 아니라 제 아무리 뛰어난 밴드가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고 해서 완전하게 신선한 음악이 나올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과연 얼마만큼 극복의지를 보였냐는 것일 게다. 이 앨범을 꼼꼼히 들어본다면 그 비슷함 가운데서도 분명히 몇 곡의 눈에 띄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올드 스쿨 힙 합에 경도된 그러나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앨범을 통해서 다양함을 모색하는 트릭 터너. 후발주자라고 해서 동일한 것을 반복하기보다 이번 결과물처럼 조금이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좋은 출발이다.
글 / 고영탁 (월간 oi music)
자료제공 / BMG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