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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street Boys / Greatest Hits - Chapter One (2CD Special Edition+VCD/Digipack/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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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Backstreet Boys / Greatest Hits - Chapter One (2CD Special Edition+VCD/Digipack/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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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01. I Want It That Way
02. Everybody (backstreet`s Back)
03. As Long As You Love Me
04.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
05.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
06. We`ve Got It Goin` On
07. All I Have To Give
08. Larger Than Life
09. I`ll Never Break Your Heart
10. The Call
11. Shape Of My Heart
12. Get Down (you`re The One For Me)
13. Anywhere For You
14. The One
15. More Than That
16. Drowning

 CD 2

01. All I Have To Give (the Conversation Mix)
02. Shape Of My Heart (soul Solution Mix Show Edit)
03. As Long As You Love Me (soul Solution Club Mix)
04. Larger Than Life (jack D Elliot Radio Mix)
05. More Than That (hani Radio Edit)
06. Everybody (multiman Remix)
* Enhanced Music Video :
07. As Long As You Love Me
08. Want It That Way
09. The Call

Bonus VCD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판 팩키지. 미공개사진으로 구성된 히스토리 북클릿과 2 FOR 1 으로 구성! 한국반에만 수록되어 있는 최초공개 히트곡 리믹스 버전 6곡 & 뮤직비디오 3곡 수록. 팝 역사를 다시 쓴 Backstreet Boys의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 Chapter One 1972년 10월 3일생으로 켄터키(Kentucky)주 렉싱턴(Lexington)에서 태어난 케빈 리처드슨(Kevin Richardson), 1973년 8월 22일 플로리다(Florida)주 올랜도(Orlando)에서 Howie Dwaine Drough란 본명을 지닌 채 태어난 하위 디(Howie D.), 1975년 2월 20일 Brian Thomas Littrell이란 이름으로 역시 켄터키주 렉싱턴 남부 지역에서 태어난 브라이언 리트렐(Brian Littrell), 1978년 1월 9일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 비치(West Palm Beach)에서 출생한 AJ 맥린(Alexander James McLean) 그리고 1980년 1월 28일 뉴욕(New York)주 제임스타운(Jamestown)에서 Nicholas Gene Cart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팀의 막내이면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닉 카터(Nick Carter). 이 다섯 젊은이를 우리는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라 부른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해체 이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남성 아이돌 스타 군단 - 후일 ‘보이밴드’라 불리게 되는 - 선풍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원조(元祖)인 동시에 “오래 가기 힘들 것”이라던 평단의 질시와 저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 남아 팝계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이끌고 있는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모두 3장의 - 혹은 4장 - 정규 앨범을 발표해 그 중 앞서 발표한 둘은 이미 RIAA 인증 다이아몬드 앨범(1,000만장)의 판매고를 인증 받기도 한 이들이 그간의 주요 히트 곡 15트랙과 비장의 신곡 Drowning을 더해 모두 16트랙이 빼곡하게 담긴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 Chapter One]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몇 개월간 끊이지 않았던 해체설과 멤버들의 잇단 부상 그리고 AJ가 겪었던 슬럼프 등으로 인해 이번 베스트 앨범이 혹시 유작(遺作)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조심스레 제기된 것이 사실이나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Black & Blue World Tour]가 성황리에 재개되어 매진 사례가 연이은 것 등을 두고 볼 때 아직 때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1996년 10월 일본 프로모션 투어 직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던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댄스 그룹으로 비쳤던 이들이 오날날 이렇게 팝 역사의 한 획으로 자리하게 된 비책은 무엇일까? 그들 스스로가 ‘보이밴드’의 한계를 절감해 1999년의 [Millennium] 앨범 이후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개발해 거듭 나는 ‘진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까닭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의 골수 팬들은 이미 훤히 꿰고 있을 사실들이지만 행여 가볍게 흘려 들을 요량으로 (일단) 베스트 앨범을 집어 들었을 미지(未知)의 팬들을 위해 그들의 짧고 굵었던 역사를 특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초기(初期)사 중심으로 가볍게 정리해 보도록 하자. 스타를 꿈꾸며 고군분투하던 AJ와 하위가 플로리다주 등지에서 거행된 다양한 신인 발굴 콘테스트와 오디션 행사를 통해 눈인사를 나누고 급기야 무대 뒤에서 나눈 뜻이 통한 대화들이 밑거름 되어 의기투합하면서 여명이 밝은 셈이다. 후일 루 펄먼(Lou Pearlman)이 주최한 오디션에서 일단 하위와 AJ가 합격하게 되었다. 루 펄먼은 전직 로커로 1989년 이후 (백인) 소년들로 이루어진 팝 아이돌 스타를 만들어 낼 야심을 꾸준히 실행으로 옮긴 인물이었다. 그는 1992년 여름, 올랜도 지역 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내 걸었다. Producer Seeks Male Teen Singers That Move Well Between 16-19 Years Of Age Wanted For New Kids-Type Singing/Dance Group. Send Photo Or Bio Of Any Kind To... 이 행사에 참여했던 또 한명의 숨은 인재가 바로 닉 카터인데 그는 본디 최초 심사에서 낙방했으나 일주일 후 치러진 비디오 테이프 재심사를 통해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 후 이어진 오디션을 통해 샘(Sam Licate), 찰스(Charles Edwards)가 합류해 5인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올랜도에 위치한 패밀리 레스토랑 TGI Fridays에 모여 앉아 열띤 토의를 벌인 끝에 그 무렵 또래 젊은이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던 Backstreet Market이라는 프리 마켓의 이름을 그들을 대표할 이름으로 차용해 오기로 합의했다. 일은 순조로운 듯 보여 소울 그룹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의 1969년 히트 넘버 Get Ready, 그리고 빅 파파와 하위에 의해 만들어진 Tell Me That I’m Dreaming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그룹을 떠난 샘과 찰스로 인해 이들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고쳐 이내 이들을 대체할 새 멤버를 찾기 시작했다. 디즈니 랜드에서 일하고 있던 케빈을 소개 받았고 그를 통해 사촌지간인 브라이언과의 전화 통화가 성사되어 비로소 지금과 같은 멤버 진용의 백스트리트 보이스가 완성되게 된 것이다. 이 때가 1993년 5월이다. 그 후 크고 작은 레스토랑, 쇼핑 몰, 클럽 등지에서의 공연이 이어졌고 급기야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주최한 [AIDS 자선 기금 마련 행사]에 출연하는 행운이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뉴 키즈 온더 블록의 로드 매니저로 활동했던 조니 라이트(Johnny Wright)에 소개되었고 이들의 즉석 아카펠라 공연에 감동한 조니는 그 즉시 이들과 메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이 때 조니는 뉴 키즈의 대 히트 곡 Hangin’ Tough의 플래티넘 디스크를 보여주며 “이것이 뉴 키즈가 이룩한 것이다. 너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간단하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은 시간과 땀을 통해 일궈낼 수 있는 것이다. 너희에겐 재능이 있다. 이것을 벽에 걸어 놓고 스스로를 고무시켜 후일 너희의 앨범이 출시되어 성공을 거두었을 때 뉴 키즈의 것 대신 너희들의 디스크를 벽에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 밴드가 없어 DAT 반주에 맞춰 공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낙담하지 않았고 수 많은 레이블 A&R 담당자들로부터 “좋은 그룹이지만 사양하겠다. 이제 뉴 키즈와 같은 보이밴드의 시대는 끝나 버렸다. 그 붐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반응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들을 거절한 레코드 회사는 25개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몇 메이저 레이블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긴 했으나 이상하게도 일이 꼬이고 틀어져 매번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 이들은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 일상적인 미국 내 스쿨 투어를 계속했다. 그러자 길이 열렸다. 그들의 클리블랜드(Cleveland) 공연을 관심 있게 지켜 본 [자이브(Jive)] 관계자들과 뉴욕으로 날아가 레코드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아직 고교생 신분이었던 AJ와 닉은 가정교사를 두어 시험을 치르며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뉴 키즈들도 데뷔 앨범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던 것에 착안, 초기 투자 비용은 만만치 않을 지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들을 가꿔야 한다는 판단 하에 멤버 각자에게 정상급의 안무가,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가 배당되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미지 메이킹을 구축해내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제는 이들의 역량을 극대화해 드러내 보일 가장 적합한 프로듀서를 찾아내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후보에 오른 수많은 실력파 가운데 데니즈 팝(Denniz Pop)이 그 적임자로 발탁되었다. 이들은 이내 스웨덴으로 날아갔고 숙식을 함께 하며 Nobody But You, Quit Playing Games의 레코딩 작업을 진행했다. 뮤직 비디오 촬영은 이들의 본거지이자 후일 ‘틴 팝 뮤지션들의 메카(Mecca)’로 통하게 되는 올랜도에서 치러졌다. 1995년 9월 데뷔 싱글 We’ve Got It Goin’ On으로 미국 시장에 데뷔했으나 음반사의 적극적이고 전폭적인 후원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의 최고 순위는 12월 2일자 차트에서의 69위가 고작이었다. 다들 뉴 키즈가 남기고 간 후유증에 질린 탓인지 아예 곡조차 에어플레이 리스트에 올리지 않는 눈치였다. MTV 역시 상품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방송에 이들의 작품을 내보내려 들지 않았고 계획되었던 미국의 프로모션 투어도 저조한 반응 탓에 아예 물 건너 가버렸다. 같은 해 10월 UK 싱글 차트에 We’ve Got It Goin’ On이 데뷔했으나 최고 54위에 머무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1995년 12월 UK 차트에 두 번째 싱글 I’ll Never Break Your Heart가 데뷔해 최고 순위 42위까지 진출하면서 백스트리트 소년들은 이들의 프로모션 방향을 영국 및 유럽 시장으로 돌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어 코트 인 디 액트(Caught In The Act), DJ 보노(Bono) 등의 투어에서 오프닝 액트로 나서게 되었고 결국 영국의 [Smash Hit]가 수여하는 시상식에서 Best New Tour Act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96년 1월 독일에 발매된 싱글 We’ve Got It Goin’ On이 4위에 오르고 처음으로 골드 디스크도 획득했다. 이에 [자이브] 본사로부터 “지금은 미국을 떠나, 어쨌든 너희들이 필요로 여겨지는 곳으로 가라”는 전언을 듣게 되었다. 2월에 이들은 독일을 필두로 한 첫 유럽 투어를 시작했고 이 즈음 하여 캐나다 지역에서도 이들의 인기가 불 붙기 시작했다. 1996년 5월 독일 시장에 이들의 (비공식 첫) 앨범 [Backstreet Boys]가 출시되어 앨범 차트 1위에 올라 5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들의 첫 플래티넘 디스크가 되었고 4주간이나 1위 자리를 지켰다. 1996년 6월 영국 최고 인기의 순위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에 출연해 공연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고 이후 3개월간을 유럽, 아시아, 호주 프로모션 투어를 수행하며 보냈다. 8월 18일 발매된 두 번째 싱글 We’ve Got It Goin’ On이 영국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었다. 이어 9월 발표된 앨범 [Backstreet Boys]가 12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즈음 독일에서는 [Backstreet Boys]의 판매고가 100만장을 넘어갔다는 희소식이 터져 나왔고 1996년 10월 한국과 일본 등 극동 아시아 투어를 병행해 우리 팬들도 그들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1996년 11월 재발매된 I’ll Never Break Your Heart 싱글이 최고 8위까지 상승해 그 즈음 새롭게 싱글 커트된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가 유럽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빅 히트를 기록했다. 독일에서 4주 연속 1위, 오스트리아에서 2주 연속 1위 그리고 스위스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듬 해인 1997년 2월 영국 시장에 발매된 이 싱글은 당당 2위 자리에까지 치고 올라가 바야흐로 이들의 전성 시대를 예고하기에 이른다. 3월 10일 발표된 매력적인 발라드 넘버 Anywhere For You 역시 UK 싱글 차트 4위에 올랐다. 이어 캐나다 투어가 시작되었고 1997년 4월 20일자 [USA Today]에 이들의 앨범 [Backstreet Boys]가 전세계 매상 850만장을 넘어섰고 총 26개국에서 골드와 플래티넘 디스크를 획득했으며 홈 비디오 역시 캐나다에서만 160만개 이상 팔려나갔다고 대서특필되어 보도되었다. 그리고 1997년 6월 6일을 기해 이들의 본토 공략이 시작되었다. 미국 시장으로 돌아 온 이들이 싱글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를 발매한 역사적인 날이다. 급기야 6월 28일자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싱글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가 24위로 데뷔하는 이변이 속출했다. 그 다음 주에는 13위로 급상승하더니 결국 최고 순위 2위에까지 진출했다. 7월 14일에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Everybody (Backstreet’s Back) 싱글이 발매되었고 8월 1일에는 일본 시장에서 제일 먼저 새로운 (비공식 2집) 앨범 [Backstreet’s Back]을 선보였다. 한국 시장에는 당시 라이선스 권한을 가지고 있던 [삼성뮤직]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8월 11일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도 [Backstreet’s Back]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팬들이라면 꼭 기억해둘 날 가운데 하나가 바로 1997년 8월 12일이다. 세계 시장 기준으로 공식 데뷔 앨범이 되는 첫 US 앨범 [Backstreet Boys]가 출시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타 국가에서 기존에 소개되었던 두 장의 앨범들에 수록된 곡들을 집대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US 버전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 29위로 첫 등장해 앨범 발매 한 달 만에 100만장의 판매고를 돌파했다. 9월 21일 고향 플로리다에서의 대망의 미국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10월에는 싱글 Quit Playing Games (With My Heart)가 플래티넘 싱글로 인증 받았다. 투어를 병행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1998년 1월 초 우연히 유럽 버전의 싱글 앨범 [Backstreet’s Back]을 손에 넣은 한 미국 라디오 방송국 프로그래머에 의해 싱글 Everybody (Backstreet’s Back)가 알려지면서 미국 전체 라디오로 퍼져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에서의 세번째 싱글로 결정되었고 3월 하순 정식 판매용 싱글이 출시되었다. 4월에는 MTV에서 주최하는 공연에서 예전의 단순 오프닝 가수 신분이 아닌 주연급의 위치에서 공연을 펼쳤다. 브랜디(Brandy), 지미 레이(Jimmy Ray) 그리고 종종 관객을 통해 우상임을 밝히고 또 히트 곡 레퍼토리를 커버하기도 했던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고향 플로리다의 태풍 피해 극복을 위한 자선 콘서트 및 언플러그드 공연도 이어져 25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조성했다. 10월에 올랜도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증정받기도 했다. 5월에는 브라이언의 심장 수술을 계기로 나머지 멤버들 역시 재충전을 위한 휴식기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에도 하위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는 맹활약을 펼쳐 멕시코와 브라질에서의 프로모션에 홀로 참석해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 첫 발매된 비디오인 [All Access]가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고, 비디오 차트에서는 1위에 데뷔하기도 했다. 네번째 히트곡 I’ll Never Break Your Heart가 미국 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을 즈음인 7월 경부터 BSB는 드디어 첫 북미투어를 시작했다. 각종 잡지의 커버 모델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라틴 아메리카 쪽에서는 As Long As You Love Me가 한달 이상이나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즈음 매니저 루 펄먼의 독재에 항거하는 BSB들의 목소리가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이들이 해체(당)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 언론들이 이에 앞장섰다. MTV Latino에서는 I’ll Never Break Your Heart의 스패니시 버전을 정말 지겹도록 틀어댔다. 미국 시장에서 다섯 번째로 싱글 커트되어히트 한 곡이 All I Have To Give로 빌보드 팝 싱글 차트 5위에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이들은 올해 벌어졌던 AJ 친할머니의 사망 그리고 지난 9월 11일 미국 항공기 테러에서 로드 매니저를 잃은 것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슬픔이었을 큰 일들을 겪었다. Ace Of Base, Five, Robyn 그리고 Jessica Folkner를 성공시킨 작곡가 겸 프로듀서 데이즈 팝이 8월 30일 지명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틴 팝 사운드의 대부(代父)인 맥스 마틴(Max Martin)과 함께 그들을 완성시키고 세계적인 성공을 일구어내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었다. 이어 하위 D의 큰 누이 캐럴라인(Caroline Cochran)이 악성 부스럼의 일종인 루퍼스(Lupus)란 질병으로 사망했다. 후일 그가 이 질병의 예방 및 계몽 그리고 치료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10월 중 루 펄먼과의 법정 공방이 마무리 지어졌다.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고 신보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비교적) 두문불출한 상태로 지냈다. 닉의 어머니 제인(Jane)이 [The Heart And Soul Of Nick Carter]란 타이틀의 저서를 출간해 특히 닉 카터를 사랑하는 팬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1998년이 저물어 갈 무렵 이들의 US 데뷔 앨범이 셀린 디온(Celine Dion)의 [Let’s Talk About Love]와 함께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 1999년 벽두, 소년들은 새로운 매니지먼트 회사 The Firm과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소속사 동료로는 뜻밖에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그리고 아이스 큐브(Ice Cube)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RIAA로부터 데뷔 앨범의 판매고가 천만장을 넘어섰음을 인증 받아 자랑스러운 ‘다이아몬드 디스크’를 수여 받아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이어 4월에는 곧 선보일 신작 앨범의 첫 싱글 I Want It That Way가 미 전역에서 방송되기 시작했고 이보다 더 시기적절하기는 힘들 것 같은 타이틀을 내걸고 발매된 [Millennium] 앨범은 5월 18일 전세계에 첫 선을 보였다. 발매 첫 주 미국내 판매량이 1백 1만장에 호가하는 대 기록을 세워 한번 더 이들의 저력이 수치상으로 검증 받기도 했다. I Want It That Way는 라디오 에어플레이 집계 만으로 4월 24일자 빌보드 팝 싱글 차트 72위로 데뷔했다. 결국 판매용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최고 6위까지 올랐고 빌보드 Adult Contemporary 차트에서는 I’ll Never Break Your Heart에 이어 두번째 No.1 곡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브라이언과 닉이 한 소절씩 주거니 받거니 노래했고 이들 특유의 풍부한 하모니가 매력적인 팝 넘버로 히트 메이커 맥스 마틴이 힘을 실어 준 아름다운 사랑 노래였다. 넘쳐 나는 젊음의 에너지가 감지되는 파워 댄스 넘버 Larger Than Life가 후속 싱글로 결정되었다. 맥스 마틴과 아울러 브라이언이 공동 작곡자로 이름을 올려 이들의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새삼 돋보인 곡으로 홍보 방향을 싱글 커트 위주 아닌 앨범 세일즈와 라이브 공연에 주력하는 쪽으로 선회한 탓에 판매용 싱글의 발매는 없었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히트(싱글 차트 25위)를 기록했다. 특히 미래적인 느낌의 뮤직비디오 역시 함께 각광 받았고,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라는 작은 기록을 덧붙일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인 9월 중 최대의 라이벌로 꼽히는 엔싱크(N Sync)가 같은 레이블 [자이브]에 둥지를 틀기로 했음이 공표되었다. 11월에는 이들의 전속 계약금이 6천만 달러로 인상, 책정 되었음이 외부에 공개되기도 했다. 새 천년을 앞두고 조니 노 네임(Johnny No Name)이라는 가명으로 보다 록적인 성향의 솔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리라는 AJ와 관련된 풍문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물론 해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님이 본인의 입에 의해 확인되었다. 2000년이 밝았으나 루 펄먼을 둘러 싼 또 다른 소송 건이 진행되기도 했다. 한편 국내 팬들의 정서에도 부합되는 마이너 멜로디로 애절한 느낌을 전해주는 발라드 Show Me The Meaning Of Being Lonely(팝 싱글 차트 6위)가 사랑 받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투영해 담은 뮤직비디오 역시 함께 애청되었다. 이어 국내 주류 CF에 삽입되면서 그 인기가 해를 넘긴 또 다른 히트 싱글 The One(팝 싱글 차트 37위)이 연속 히트를 기록했다. R&B 싱어/송라이터 조(Joe)의 원전을 나름대로 해석해 재창조한 인상적인 발라드 No One Else Comes Close도 잔잔하게 여운을 남긴 [Millennium] 앨범에는 모두 13곡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포진 되어 있었다. 스탠 리(Stan Lee)와 협력해 만화책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하리라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 2000년 2월이었는데 웹 사이트에 기반한 이 프로젝트는 [The Backstreet Project]라 명명되기도 했다. 케빈과 브라이언이 솔로 생활을 청산한 해이기도 하다. 그래미 시상식장에서의 소개 멘트에도 이들의 약혼 이야기가 거론될 정도로 화제를 뿌렸다. 비록 집에 빈 손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역대 수상자들의 주요 히트곡을 메들리로 열창한 라이브 퍼포먼스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그리고 이들의 라이브 실력을 반신반의하던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전작 [Millennium]으로 전세계 추산 판매고 3천만장의 기록을 세웠던 BSB의 최신 앨범 [Black & Blue]가 11월 21일 발매되었다. 소울에 기반한 질펀한 록 사운드를 선보였던 영국 출신의 대 선배 노장 그룹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에게서 영감을 받은 타이틀 작명에 걸맞게 이들은 한 단계 크게 진화한 모습을 선보였다. 보다 다양한 색채의 곡ㄷ르을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한때 ‘보이밴드’였던 ‘성인 팝 보컬밴드’로의 확실한 변신을 성취해냈다. 싱글 커트된 Shape Of My Heart 역시 정식 싱글 발매 없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39위로 핫 샷 데뷔하기도 해 11월초 최고 순위 12위까지 진출했다. 미국내에서 700만장 이상의 초도 주문을 기록했고 출시 첫 주 미국내에서만 16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본작은 응당 그러하리라 여겨졌던 맥스 마틴 외에 베이비페이스(Babyface),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 등 ‘검은’ 명장이 참여해 보다 R&B적인 색채를 강화했고 아울러 앨범을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발라드 트랙들과 업템포 트랙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는 능수능란함을 보이기도 했다. 두번째 싱글로 커트되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뮤직비디오와 더불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The Call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화 통화 중인 듯한 효과를 자아내는 전자 음향을 사용했고 리듬 트랙이 강화되어 비트 감이 넘치고 아울러 살며시 가미된 라틴 풍의 편곡도 일품이어서 싱글 차트에서는 50위에 머무르는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낳았으나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편 전형적인 BSB 사운드에 충실한 한편 보다 강화된 보컬 파트와 화음이 이들의 성숙도를 절감하게 하는 More Than That이 세번째 싱글로 발표되어 올해 6월, 28위까지 치고 올라와 주목 받았다. 다섯 멤버 모두가 작사, 작곡에 참여했고 베이비페이스가 프로듀스한 Time 등이 특히 매우 소울풀(soulful)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R&B 발라드 넘버였고 버거킹 프로모션 곡으로 사용되었던 It’s True도 수록되었다.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장에 온전한 다섯 멤버가 함께 모습을 드러내 건재함을 새삼 알리기도 했던 BSB가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이름하여 [Greatest Hits - Chapter One]. 여타 틴 팝 스타들이 그러했듯 이들의 생명력도 여기까지가 다인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주옥 같은 히트 트랙들로 가득한 본작의 앨범 타이틀이 이야기 하듯 이제 화려했던 하나의 장(章)을 접고 또 다른 그 무엇인가를 향해 비상하려는 듯 보인다. 여전한, 아니 더 뜨겁고 강렬한 이들의 대중적 인지도와 저력을 반증하듯 유일한 신곡으로 수록된 Drowning이 지난 10월 12일자 빌보드 팝 싱글 차트 56위로 핫 샷 데뷔하여 기염을 토했다. 역시 이번에도 판매용 정식 싱글 발매는 없고 오로지 에어플레이로만 산출된 순위이다. 앞으로의 추이를 좀 더 반가운 맘으로 지켜보아도 좋을 듯 하다. 사족] 아, 곁들이자면 20세기 말 팝씬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파장을 발휘한 절대적 최강자 백스트리트 보이스는 유독 멤버 전원이 고루 라이브에도 강한 만큼 차라리 이번 베스트 앨범이 라이브 공연 실황 가운데에서 추출한 음원들로 꾸며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글 / 양중석 (앨범내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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